개발기 · 1편

왜 만들었나

대본 작업실 개발기 · 2026

저는 늘 이런 사람이었어요. 어떤 일이든 "이거 더 쉽게 할 수 없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특히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자동화하고 싶었고, 수기로 하는 작업은 죄다 디지털로 바꿔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다니던 직장이 복지시설이었어요. 공공기관 성격이 강한 곳이라 변화가 쉽지 않았어요. 아이디어가 있어도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죠. 그래서 혼자 SQL을 배우고, 파이썬을 배우고, 창업 교육도 들으면서 시설에서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5년 전 얘기예요. 결과는 포기였어요. 당시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배운 것들은 있었지만 만들고 싶은 건 여전히 머릿속에만 있었어요.

드라마 작가가 되기로 했어요

그 후 직장을 그만두고 드라마 작가 공부를 시작했어요.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대본을 쓰기 시작하니까, 또 그 익숙한 불편함이 찾아왔어요.

한글(HWP)로 대본을 쓰는 게 생각보다 번거로웠어요. 스타일을 한 번 정해두면 어떤 파일에서든 바로 불러올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기능이 없는 것 같았어요. 결국 매번 처음부터 스타일을 설정하거나, 예전에 썼던 파일을 비워서 다른 이름으로 저장해서 다시 쓰는 식이었어요.

더 큰 문제는 씬 번호였어요. 드라마 대본에는 회상 씬처럼 다른 씬을 참조하는 지문이 자주 나와요. "S#3씬에서 봤던 그 눈빛처럼—"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수정하다 보면 씬 순서가 바뀌잖아요. 그때마다 지문 속 씬 번호를 하나하나 찾아서 고쳐야 했어요. 고치다가 빼먹기도 하고. 심지어 제출하고 나서야 발견하기도 했어요.

왜 이게 안 되지. 뭐든 다 되는 이 세상에.

그러고 그냥 넘어갔어요. 불편하지만 다들 그렇게 쓰니까, 저도 그냥 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만 불편한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주변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다들 비슷했어요. 한글로 예전 파일 비워서 다시 쓰거나,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처음부터 수동으로 입력하거나. Final Draft 같은 전용 프로그램은 너무 비싸고, Scrivener는 한국 대본 포맷을 지원하지 않아요.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었어요.

나처럼 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분명히 또 있겠다, 그렇다면 이걸 해결하는 도구가 필요하겠다 — 그때 처음으로 그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 생각이 바뀐 건 바이브 코딩을 알게 되면서였어요.